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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 SUSPENCE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밤 눈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1989)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ㅡ 詩作 메모 (1988. 11) 오늘 병원 가는 길에 마시는 공기가 참으로 작년 가을의 프라하를 닮았더라. 처음으로 낯선 도시에 홀로 섰을 때 나는 오십 킬로그램의 짐덩이를 이고 있었다. 택시를 잘못 탄 바람에 내가 지금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고 어둑한 그 거리에선 야속하게 지나는 이 하나 없다. 택시비로 계산한 돈을 환산해보니 사만 원. 짐을 뒤에 두고 무력하게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목이 메여온다. 울지는 않았지만 어느 작가의 말처럼 억울해졌다. 그러니까 그때의 막막함과 두려움과 억울함과 그리고, 무거운 냄새가 똑 닮은 춘천의 가을 바람. 나는 불현듯 익숙함을 잊었다. 지난 육 개월을 동여맨 편지를 어젯밤 보내었다.. 아마도 마지막 편지. 구월이 끝나고 시월이 시작되면 어느 하루쯤은 마음놓고 소리내어 울어야지. 시나브로 구월이 다 흘러가버리면ㅡ 잊지 말고 나를 깨워줘요. 나의 외로움이 당신을 부르는 것인가? 아니 당신은 그리움 그 자체다. 내 심연의 검은 속을 들여다보면 물 위를 비추는 모습은 내가 아니라 당신일 것만 같다. 비겁하게 변명하는 나도 인간인지라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과 기억이 조금씩 식어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고 가슴 아파 우는 시간들이 존재함을 당신은 아는가. 서늘한 바람이 불고 바람 같은 음악이 잔잔히 내 귓가를 두드릴 때 ㅡ 파도처럼 일렁이는 마음 차마 감당하기 힘들어 고개 떨어뜨리는 내가 있음을 당신은 아는가. 사실은..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아무것도 아니며 정말이지 지리멸렬하도록 온전하게 나만의 것들. 그러하니 당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도 그리움만은 잊지 않고 간직할 테다. 조용히 나를 찾아오는 이 그리움만은. 칠월 말부터 채식을 했는데 지금 구월이니 겨우겨우 한 달 넘긴 셈이다. 아랫배가 묵직하며 몸이 무거웠던 증상은 확실히 채식을 한 뒤로 많이 좋아졌다. 단백질 섭취에 따로 신경을 쓰지 못해 손톱이 갈라질 때도 있었지만 이 부분만 주의하면 육 개월 이상도 가능할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삼 주만 견디면 거진 익숙해진다는데 마의 스무하루를 지나서 그런지 이제는 괴기 먹고 싶어 안달하지 않는다. 내 바로 앞에서 누가 괴기를 먹어도 태연히 채소를 집어먹는 나 자신이 좀 뿌듯하다! 캬캬 내일 회식하는데 내가 하도 채식한다고 깝친 덕분에 회 먹기로 했음. 해물은 먹되 밀가루는 먹지 않는 부분 채식이라 점심 때 짬뽕도 못 시켜먹는데 짬뽕을 꼭 먹어야 하는 날 ㅡ 비 오는 날엔 조금 우울하기도 하지만 아직 참을 만하다. 짬뽕하니 생각난다. 어제는 또 그 꿈을 꾸었다. 그저께였나 이웃 분이 대화 중 보여준 슬픈 오타 때문인 듯. 당시에 내가 그 오타를 냈을 땐 부끄럽고 웃겼는데 이제는 슬프기만 하다. ![]() 집 맞은 편의 허름한 삼 층 건물 옥상 우중충한 하늘과 허름한 건물. 화분. 사진은 크기만 줄이고 색 보정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일절 건들지 않았다. 잘 찍었든 못 찍었든 잘 나왔든 못 나왔든, 풍경을 건드는 짓은 어쩐지 죄스럽기 때문. 사실 풍경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삭막하긴 해도 말이다. 실제로 보면 좀 짠할 정도로 아름다운 꽃들인데도 사진에서는 그런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아 아쉬울 따름. 나만 좋은겨.. 하늘하늘한 쉬폰 천을 연상시키는 하늘과 허름한 건물 그리고 여름만 되면 만개하는 화분들. 세련되지도 못했고 더럽기까지 한 허름한 건물의 옥상이 이토록 신비로울 수 있나. 오며가며 지날 때마다 다짐한다. "언젠가는 저 옥상 위에 올라가보겠어. 언젠가는." 옥상 바로 아래는 기원이다. 오묘한 간판을 달고 있는 곳으로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하신 할아버님들의 사랑을 받는 듯 언제 보아도 창문이 열려 있다. 가끔 계단을 내려가다가 할아버지들이 몸을 푹 수그리고 바둑에 몰두하는 모습을 훔쳐보기도 하는데ㅡ 오랜 고목을 연상시킨다고 하면 무례하다 욕하시려나? 신비로운 옥상과 낙원기원과 국시집이 함께 있는 저 허름한 삼 층 건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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